八須夫人
八須夫人(?—?),百济第18代国王腆支王的夫人。韩国历史学家盧重国 、金鉉球、金起燮、洪性和认为八須夫人是倭人[1][2][3][4][5]。
八須夫人是百济第19代国王久爾辛王的母亲,一说久爾辛王是腆支王庶子。405年阿莘王死后,腆支王在倭国为质子。监国训解被碟礼杀害,倭国军队护卫下腆支王回到百济,诛杀碟礼即位。420年,腆支王死后,由其长子久爾辛王继承百济王位。
註釋
编辑- ^ 노중국. 5世紀의 韓日關係史 : 《宋書》 倭國傳의 檢討 (PDF). 한일역사 공동연구보고서 (韓日歷史共同硏究委員會 ). 2005: 231-232. (原始内容 (PDF)存档于2021-11-27).
- ^ 金鉉球.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Changbi Publishers, Inc. 2010-12-24: 187. ISBN 8936482599.
일본에서 8년만에 귀국한 직지왕의 부인 이름이 팔수부인(八須夫人)으로 씌어 있다. 고대 일본에서는 사람 이름에 ‘팔’이라는 글자가 흔히 들어간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람 이름에 ‘팔’자를 사용하는 예가 거의 없다. 따라서 직지왕의 부인은 일본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일본은 661년 백제 왕자 풍의 귀국에 즈음하여 그를 일본 여인과 혼인을 맺게 한 예가 있다. 이런 면에서도 야마토정권은 직지가 귀국하기에 앞서 그를 일본 여인과 혼인을 맺게 했을 가능 성이 높다. 그렇다면 동성왕이나 무령왕의 부인도 일본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도 일본에서 성장하여 혼기가 지나 귀국했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이 백제의 왕자들을 정책적으로혼인시켜 돌려보냈다면 그 상대는 황가의 여인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제의 왕자들이 혼인한 상대가 천황가의 여자들이었다면 백제왕가에도 일본천황가의 피가 수혈되기 시작한 셈이다.
- ^ 洪性和. 石上神宮 七支刀에 대한 一考察. 한일관계사연구 no.34 (한일관계사학회). 2009. (原始内容存档于2022-06-11).
- ^ 金起燮. 백제의 주민과 이주 여성. 한국여성사학회. 2017: 14-16. (原始内容存档于2022-08-11).
-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京鄉新聞. 2021-06-28. (原始内容存档于2021-08-22).
參考資料
编辑- 《三国史記》卷25·百濟本紀3